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트로트가수 문주란 유부남와 불륜,본처 사주로 납치돼! 남진,백일섭과 동거설? 근황 충격 상황!

트로트가수 문주란은 과거 히트곡이 상당히 많은 가수로 많은 이들이 아직도 그녀의 노래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문주란은 60년대 국민 여동생으로 불릴 만큼 전국민적 사랑을 받은 가수다. ‘동숙의 노래’로 데뷔해 연속으로 히트곡을 냈다. 한국에 이어 전속활동을 했던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문주란은 아직까지 미혼으로 그렇게 인기가 있던 여자 가수가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많이들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문주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공개됐다. 전성기때의 문주란은 연예계의 유명한 트러블 메이커였습니다. 

 

문주란은 1949년 9월 30일 생으로 72세이고 본명은 문필영입니다. 

문주란은 1966년 17세 때 '동숙의 노래'로 데뷔, 독특한 중성 보이스와 뛰어난 가창력을 뽐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여성스럽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문주란이었지만 굵고 깊은 저음이 특색이었는데 국내 최저음 여가수, 어른 목소리를 내는 아이로 화제를 모으며 한번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문주란은 리즈 시절 대표하던 별명이 국내 여자가수 중 음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 가수라고 불렸는데 무려 0옥타브대의 저음을 쉽게 소화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음독 사건, 남진과의 스캔들, 유부남 스캔들 등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했다.

문주란은 "19세 때는 남자의 '남'자도 몰랐을 때다. 그런데 남진과의 스캔들도 있었고 온갖 루머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는 다 싫었다. 온갖 루머들이 나오니까 견디기 힘들었다"며 "음독 후 보름만에 눈을 떴다"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그는 데뷔하고 몇 년이 지난 1969년, 실연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었습니다.

 

문주란: "(자살기도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남진씨만 부각시키시는데 그건 아니에요. 두 사람은 고(故) 박춘석 사단으로, 절친했던 사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주란은 “그때 남진이랑 한강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했다’는 등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남진씨는 사석에서 제가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오누이처럼 친한 사이인데, 그 당시에 이게 스캔들이 돼 속상했죠."

그러면서 “나는 너무 어렸다. 생각도 어렸다. 아무것도 몰랐다. 나이 어린 애한테 되지도 않은 엉터리 이야기가 나오니까 나름대로 잡음이 있었던 거다. 그때 술을 마시고 사고가 난 것이다. 그리고 보름 만에 눈을 떴는데 다들 나를 살려 달라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문주란은 첫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문주란은 “이후에 20살 넘어서인가 한 남자를 만났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못 받아서 자꾸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첫사랑이 유부남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왜 그런 사람을 만났을까. 어리석은 사랑을 했다”고 덧붙였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첫사랑 남성이 바로 유부남이었던 것이였습니다.결국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도 문주란이 미혼으로 있는 것 같네요.

문주란: "또한 당시 첫사랑에도 실패했고, 이러저러한 일이 많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한 거예요(자살 시도를 한 거에요). 결국 그런 일(다량의 수면제 복용)이 있은 뒤, 중환자실에 있다가 보름 만에 눈을 떴어요. 그때 아버지와 가족, 팬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그래도 있지도 않은 스캔들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어린 나이엔 상처가 됐어요."

 

사실 문주란 납치 사건 역시 이것과 연관이 있었죠.

 

1970년 곧장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했지만 4년 후인 1973년 여의도에서 문주란이 어린 조카와 함께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문주란의 납치사건은 당시 아주 유명했습니다.

문주란은 대낮에 방송국에서 첫사랑이었던 유부남의 부인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일화도 털어놨다. 문주란은 “그쪽(첫사랑) 부인에 의해서 납치당했다. 방송사까지 와서. 나한테 첫사랑이었지만 남의 남자니까”라고 말했다.

 

문주란은 “그 사건이 컸다. 그렇게 아픈 상처를 주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좋은 데로 시집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갔다가라도 왔을 텐데,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아쉬움을 고백했다.

..

문약 정수복이 남편 오동근과 문주란을 간통죄로 고소를 했다면, 둘다 꼼짝없이 교도소에 갔을텐데, 오히려 정수복이 폭력 행위로 입건당하게 되었네요.

 

또 그 후에도 문주란의 스캔들은 이어졌습니다.

남진, 백일섭과 동거설 등도 불거졌습니다.

문주란: "백일섭과의 스캔들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프로그램에서 함께 촬영을 했는데 스캔들이 났다."(문주란 백일섭 동거설)



사실 가요잡지가 많았던 1970년대에 모 기자가 문주란과 백일섭에게 집에서 다정하게 요리하는 컨셉을 요구했고, 이것이 잡지에 나가면서 문주란과 백일섭간의 스캔들로 비화된 것이죠.

 

그리고 문주란은 2년 뒤인 1975년에도 또다시 스캔들을 일으킵니다.

 

원래 문주란은 1975년 9월경 미국 공연계약을 맺습니다.

 

LA의 나이트클럽 영빈관에서 2개월 동안 공연을 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문주란이 남자친구 오동근(이름)과 함께 '센트리 플라자' 호텔에서 사라지는 사건을 일으켰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당한 영빈관의 사장이 노발대발하게 되었죠(문주란 잠적 사건).



결국 연예협회는 문주랑에게 '무분별한 해외 공연으로 국위를 손상시켰고, 몰지각한 사생활로 사회 기강과 윤리를 문란케했으며, 전 연예인들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6개월간의 징계 처분을 내리게 되었죠.

 

당시에는 연예인 협회가 열(?) 받아서, 문주란에게 6개월동안 가수 활동을 금지하는 징계를 내리기도 했죠.

다만 문주란 상대남이 유부남이긴 했지만, 오랫동안 같은 남자를 사랑했던 점은 특이하네요.



이렇게 문주란은 전성기때 트러블 메이커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아마 어릴 때의 복잡했던 가정사가 문주란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문주란의 노래에 대한 사랑외에도,

 

아마 행복하지 않았던 가정 환경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문주란은 자신의 복잡한 가정사를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문주란: "어머니가 딸만 다섯을 낳자,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던히도 서럽게 만들었죠. 나중에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을 안 하셨어요."



문주란: "결국 마지막으로 아들(문주란의 막내 남동생)을 얻었는데, 제가 5살때 그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재혼을 하셨죠."

 

문주란; "새어머니는 큰언니 친구의 누나였어요. 대학까지 나왔는데, 큰언니와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입으로는 새어머니라고 불렀지만, 어머니의 정은 별로 느껴보지 못했어요."

문주란: "새어머니는 저나 언니들이 집을 나가서 어떻게 돼도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가수 활동을 하는 동안 친구들은 시골집에서 정이 듬뿍 담긴 음식들이 올라오는데, 저는 평생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사실 저나 언니들도 새어머니한테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고, 당연히 서로 사이가 냉랭했죠."

 

그래도 문주란은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문주란은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고독하셨고 많이 후회하는 게 있었구나 싶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 무서웠다. 데뷔하고는 몇 년간 못 뵀다.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딸이 가수 문주란이 됐다며' 하니까 좋아하신 거 같더라. 그래도 표현 안 하셨다"고 밝혔다.

 

그러자 문주란은 "파란만장한 삶이 너무도 버거웠기에 결국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심경을 고백했고, 그는 아예 남성에 대한 끌림이나 애틋한 감정이 사라졌다며 40년 넘게 독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주란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 여성으로 보면 실패작이다. 가정이란 것도 꾸며보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저는 그런 걸 못했으니까 실패작”이라고 말해 안타까움 샀다.

 

그리고 문주란은 첫사랑(?)에 실패한 이후에 독신 생활을 하게 됩니다.첫사랑 오동근과의 상처가 무척 컸던 것 같네요.

....

문주란은 연애는 했지만,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한 적은 없다. 연애는 해봤지만 첫사랑에 실패했다>

 

<젋은 시절 임자가 있던 사람(유부남)을 좋아했다. 하지만 첫사랑이었던 만큼 푹 빠져 살았기 때문에 실패의 상처도 컸다>

 

문주란 이혼, 문주란 결혼 재혼 등의 루머가 있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문주란은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내 팔자가 아마 시집 못 갈 팔자인 것 같다. 시집을 못갔느냐 안갔느냐 질문을 하는데 나 자신은 안간 것이다. 사실 사람은 외롭다.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랑도 해보고 상처도 받고 나니까 이상하게 남자가 싫어지더라.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에 대해 관심이 없어지게 되었다>

 

<내가 혼자 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울 때가 있긴 하다. 우울증을 겪고 있고 지금도 치유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몇 년도까지 방송 활동을 했냐는 혜은이의 질문에 문주란은 “나는 중간중간 잘 쉬니까 몰랐다. 쭉 해야 되는데 조금 하다가 고(故) 박춘석 선생님한테 하기 싫다고 하고 안 했다”라고 답했다. 혜은이는 “박춘석 선생님이 문주란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박춘석에 대해 문주란은 “부모 이상의 부모”라며 “쓸데 없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방황 아닌 방황을 하고 스스로를 미워했다. 자해하고 그러니까 정신병동에 넣었다. 제가 속 많이 썩였다. 만약 선생님이 안 잡아주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사람이 반드시 결혼해서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주란처럼 독신 생활을 즐기다가 홀로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죠.

 

문주란은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 같네요